원래의 명칭은 송도유원지(松嶋遊園地)였으며 1958년 5월 24일에 개장을 위한 기공식을 올리고 한국관광(주)의 방규환(方奎煥)씨와 송도임해토지주택(주)의 임완규(林完圭)씨 및 인천의 발기인들이 회동하여 송도유원보건(주) 설립 가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나 이해관계의 합의점을 찾지못해 유원지의 개장이 늦어졌다.
또 무허가 건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오점을 남기고 유원지안 건축공사가 당국에 의해 중지당하는 등, 파란의 연속이어서 시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두 회사의 개장작업대립은 풀장을 중심으로한 송도임해토지주택(주)대표 임완규 송도유원지의 해방전주인)와 보트장을 중심으로한 해원(海園(주)·대표 崔浩鄕) 사이에 빚어졌는데 그당시 인천시 당국이 중재에 힘을썼다.
분규는 그렇다치고 개장공사 작업노임으로 주권(株券)이 대불될 정도였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유원지의 개장이 늦어진 가장 큰 원인은 자금난이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은 주권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나 그당시는 판이했고 노무자들은 현찰과 빵을 원했으니 세월은 변천하기 마련인가보다.
1958년 6월 8일부터 본격적인 개장 추진 작업이 착수된 송도유원지 시공관계자들이 주로 묵었던 곳은 신포동 영신여관이었으며 이 여관이 영화배우 주선태씨의 처갓집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유원지개장공사로 물을 뺀 풀장에서는 한때 장어잡이가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글·사진 정중화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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